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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AI, 빅데이터가 만든 ‘호명사회’의 탄생 배경

@hackthe.life 2025. 3. 7. 23:50

호명사회 개념과 의의

‘호명사회’란 핵개인(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맺는 사회를 뜻한다. 쉽게 말해 더 이상 조직이나 집단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각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받고 책임지는 시대를 가리킨다. 호명사회에서는 개인의 이름이 곧 브랜드이자 정체성이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고 그에 따른 보상을 직접 얻는 공정한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기존 사회에서 흔했던 익명성이나 집단의 후광이 줄어들고, 대신 자신의 이름값으로 승부해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철학적·사회적·경제적 배경

호명사회가 대두된 배경에는 철학적 개인주의 전통현대 사회구조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계몽주의 이후 근대철학은 인간 개개인의 자율성과 권리를 강조해왔고, 개인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바라보는 사상이 확산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호명(呼名)"함으로써 개인을 사회의 주체로 구성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호명’ 개념은 개인이 이름으로 불리며 인정받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름을 호출당하며 존재 의미를 얻는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철학적 흐름과 함께,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변화 역시 호명사회의 기반을 형성했다.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양식이 해체되고 유동화되면서, 사람들은 가문이나 계층 등의 집단적 정체성에서 풀려나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시 말해, 근대성의 결과로 가족과 계급의 역할이 약화되고 **‘개인화’**가 진행되어, 이제 각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기획하도록 강제되는 구조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개인화 현상은 학벌 인플레이션, 효도 의식 약화, 이연된 보상 체계의 붕괴 등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났다. 실제로 송길영은 핵개인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면서 “학벌 인플레이션”, “효도의 종말”, “이연된 보상”, “5분 존경 사회”, “AI 동료”, “마이크로 커뮤니티”, “미정산 세대”와 같은 키워드들을 제시하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개인을 묶어주던 교육·가족·조직 체계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개인이 홀로 서는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권위주의적이고 집단 중심이었던 시대를 지나 상호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이 자립하는 시대가 찾아왔으며, 이러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호명사회의 철학적 토대와 맞물려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도 호명사회의 배경을 이룬다. 산업사회에서는 한 조직에 소속되어 평생직장을 다니며 집단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 간 경쟁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모두가 승자가 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성공을 위해 요구되는 노력과 비용은 커져가는데 비해 개인이 투입하는 시간과 열정의 가치는 떨어지고, 심지어 내가 선택한 직업이 나보다 먼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결과 한 곳에 속해서 안정적으로 보상받는 기존 모델이 무너지고, 각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압력이 높아졌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 속에서 개인의 주도성과 혁신성이 새로운 생존 조건으로 부각되었고, 결국 호명사회, 즉 각자 자신의 이름으로 승부하는 사회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적 변화: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까지

호명사회의 등장은 긴 역사적 변화의 흐름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는 공동체와 혈연 중심의 삶이 지배적이었다. 가족, 종족, 마을과 같은 집단 단위의 정체성이 강했고, 개인의 가치는 소속된 공동체의 일부로서 인정받았다. 예컨대 예전 농경사회나 봉건사회에서는 “우리”라는 집단 개념이 우선시되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가문의 이름이나 신분적 지위로 불렸고 역할이 정해졌다. 한 개인이 평생 접할 수 있는 사회적 범위도 제한적이어서, 개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기회도 적었다. 요약하면 전통사회에서는 개인보다는 집단이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현대사회로 오면서 이러한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사람들은 가족이나 고향 공동체를 떠나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국가나 회사 같은 거대 조직이 개인 정체성의 기반이 되었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 개인은 주로 직업이나 소속 조직으로 자기 소개를 했고, “OO회사 과장 김모 씨”처럼 직함과 조직명이 곧 그 사람을 대표하곤 했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는 회사와 직장이 곧 삶의 터전이 되어, 평생직장 신화와 같이 개인이 조직에 충성하며 안정성을 얻는 모델이 자리잡았다. 이 시기까지는 여전히 개인의 이름보다는 소속에 따른 역할이 강조되었지만, 동시에 법적·시민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과거보다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지는 변화의 흐름도 존재했다.

21세기에 들어서 현대 사회는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가족 구조부터 변화하여, 대가족에서 핵가족, 이제는 1인 가구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1960년대 여성 1인당 6명 수준에서 2020년대에는 0명대에 진입할 정도로 낮아졌고, 그 결과 ‘우리’에서 ‘나’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34.5%(2022년 기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10가구 중 3가구 이상이 1인 세대가 되었다. 이는 더 이상 한 가정 안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살지 않고 개인이 단독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보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엔 당연했던 가족 부양이나 혈연적 의무도 약해지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기 때문에” 삶의 선택을 하고, 나이·성별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진로를 개척한다. 즉,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취향이 이전 어느 시대보다 존중되고 있으며, 각자도생의 문화가 자리잡았다.

 

사회생활과 경력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경로의 붕괴가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좋은 학교 – 좋은 직장 – 안정된 승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로가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이러한 공식은 힘을 잃었다. 한 조직에 평생 몸담는 평생직장 개념이 희미해지고, 대신 여러 직업을 경험하며 평생직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한 회사의 간판과 직함이 보장해주던 정체성이 더 이상 영속적이지 않음을 뜻한다. 오히려 개인의 전문성, 콘텐츠 생산 능력, 네트워크 등이 모여 형성된 개인 브랜드의 가치가 조직의 명성보다 더 중요해지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예를 들어, SNS나 유튜브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플루언서들은 전통적인 기업 홍보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개인의 이름이 곧 미디어 채널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으로 평가되며,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개인’으로까지 작아진 상황을 나타낸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더 이상 조직 중심의 보호망을 기대하기 어렵고, 각자가 자기 이름으로 승부해야 하는 무대로 변모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축적은 결국 호명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았다. 오늘날 호명사회에서 개인의 이름은 곧 그 사람 자체를 대표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느 조직의 누구”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해낸 누구”**처럼 자기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고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 사람이 한 직업으로 평생을 먹고살기 어려워진 현실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방면으로 활약하도록 만들고 있다. 송길영은 이를 두고 “이제 나보다 내 직업이 먼저 죽는다!”라는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길어진 생애에 비해 한 직업의 수명이 짧아진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결국 ‘내 이름’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직업이나 소속의 간판이 사라진 이후에도 남는 것은 자신의 이름뿐이기에, 앞으로는 각 개인이 자기 이름에 걸맞은 능력과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기술 발전의 역할: 디지털 시대와 호명사회 형성

 디지털 플랫폼에 자신의 전문성과 가치를 알리는 개인 웹사이트 화면. 오늘날 호명사회의 등장은 디지털 기술 발전에 크게 힘입었다.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보급으로 인해, 개인은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언론, 출판, 방송 등 조직화된 매개자를 통해서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지만,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1인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생산 및 유통할 수 있다. 이러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부상은 개인이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팔로워 수만 명~수십만 명을 거느린 1인 미디어 스타들이 기업이나 전통 매스미디어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개인이 곧 미디어인 시대가 되었다. SNS 상에서 개인들은 자신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전문 지식이든 취미든 콘텐츠로 어필함으로써 이름을 알린다. 그 결과, 호명사회에서는 기술을 활용한 퍼스널 브랜딩이 생존전략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제 평범한 직장인도 온라인 프로필을 가꾸고, 전문가도 자신의 채널을 통해 팬덤을 형성하는 등, 각자가 자신의 이름을 홍보·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 발전은 또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호명사회를 가속화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기업과 사회는 개인 한 명 한 명의 성향과 행동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마케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각 개인이 하나의 별도 세그먼트로 대우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나 넷플릭스의 큐레이션은 개인의 취향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마다 다른 콘텐츠를 화면에 띄워준다. TV 방송조차 일방향으로 똑같은 프로그램을 송출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시청자 개개인이 각기 다른 맞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소비 분야에서도 편의점들이 1인 가구를 겨냥한 제품을 늘리고, 전자상거래에서 개인별 추천 상품을 제공하는 등 철저히 ‘나’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가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이 개인을 식별하고 호명하여, 각자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동시에 사람들도 주변에 묻기보다는 챗봇이나 검색엔진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고 결정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어,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자율적인 개인의 모습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 AI의 발전은 호명사회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 자동화 기술은 인간이 수행하던 많은 일을 대체하거나 지원하여 개인이 더욱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예를 들어 AI 비서나 각종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개인은 조직의 도움 없이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AI와의 협업인간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창의성, 개성, 공감 능력 등이야말로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핵심 역량이 되었기 때문이다. 송길영은 이를 **‘작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AI 시대에는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와 스토리를 창출해내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란 글쓰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의 색깔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를 뜻한다. 결국 AI가 발전할수록 평준화된 기술이나 지식의 가치는 떨어지고, 개인의 이름에 담긴 독창적 의미가 더욱 빛나게 된다. 이는 호명사회가 기술 발전에 대응하여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도 제시해준다. 즉, 끊임없이 학습하고 자기 혁신을 통해 남들과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디지털 아카이빙과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 등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체계적으로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호명사회는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한 개인의식 역사적·사회적 변화 결합되고, 디지털 기술 혁신 촉진함으로써 등장한 새로운 사회상이다. 전통적인 공동체 중심 질서가 해체되고 개인이 사회의 중심 주체 부상하면서, 이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평가받는 시대 맞이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익명성 뒤에 숨는 것이 어려워진 반면, 각자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투명하게 드러내어 인정받을 기회 늘어났다. 물론 호명사회는 개인에게 자유와 기회 제공하지만, 동시에 책임과 도전 부과한다. 사람의 이름 가지는 무게가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에, 계속 성장하고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 자세 요구된다. 결국 호명사회는 위험과 가능성이 공존하는 시대이며,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빛낼 있는 사람에게는 어느 때보다 많은 문이 열려 있는 동시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 앞으로 디지털 기술, 빅데이터, AI 등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호명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이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립하고, 느슨하지만 의미있는 연대로 타인과 연결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있는 역량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는 이름의 브랜드 책임 있게 관리하고 발전시킬 , 비로소 개인은 호명사회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주체적인 영위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