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현실이 될 때: 언어화의 힘
여러분은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는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인데요. 그만큼 언어, 즉 우리가 하는 말은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려운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는 과정인 언어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언어가 어떻게 사회적 현상을 형성하는지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일상 속 재미있는 예시들과 함께요. 자, 그럼 말의 세계로 떠나볼까요?
언어화란 무엇인가?
언어화란 말 그대로 생각이나 개념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머릿속에만 두는 게 아니라, 말이나 글로 꺼내어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언어화가 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 “물” 같은 말을 배워가기 시작할 때, 이 아이는 주변의 사람과 사물에 이름을 붙이며 세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치 지도에 표지판을 세우듯, 언어를 통해 복잡한 현실에 표식을 남겨가며 개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언어화를 통해 우리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고, 스스로도 그 의미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냥 막연하게 느끼던 것도 말로 설명해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이렇듯 언어화는 우리의 사고를 정리하고, 서로 소통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토대가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대부분은 적절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겹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도 이름을 붙여 불러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마음속 복잡한 감정도 말로 풀어내야 비로소 실체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까지 말했나 봅니다. 그만큼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확장해 나간다는 의미일 테지요.
언어화는 마치 머릿속 말풍선 속에 세상의 온갖 개념을 채워 넣는 일과 같습니다. 빈 말풍선에 어떤 단어를 담느냐에 따라 우리의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적절한 언어가 없으면 그 말풍선은 텅 빈 채로 남게 되고, 우리는 그 현상이나 느낌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유하기 어렵겠지요.
언어가 사회적 현상을 형성하는 방식
언어화의 과정은 개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현실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언뜻 보면 우리는 언어로 현실을 설명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언어가 현실을 해석하고 구성하는 면이 있습니다. 한 언어학자는 “언어는 그저 경험을 보고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규정하는 틀”이라고 말했는데요. 다시 말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사용되는 말의 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단어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받아들이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친구가 무심코 한 실수를 두고 *“실수”*라고 부르면 그냥 넘어갈 일처럼 느껴지지만, *“배신”*이라고 부르면 사건의 무게가 훨씬 심각해지죠. 이처럼 언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보다는, 때로는 현실을 비추는 색안경과도 같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자민 워프 같은 학자들이 주장한 언어 상대성 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렵게 느껴지신다고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미국의 한 원주민인 호피족의 언어에는 우리말이나 영어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말 — 이를테면 아침, 점심, 저녁 또는 과거, 현재, 미래 같은 — 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피족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언제 일어났느냐”보다는 “그걸 직접 보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요. 흥미롭지 않나요? 언어 표현이 다르면 그만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 다른 예로, 영어권 문화에서는 시간을 돈처럼 여겨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절약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호피족에게는 시간이 흐르는 끊임없는 흐름이라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하죠. 이렇듯 언어는 우리가 무엇에 주목하는지, 어떤 틀로 세상을 보는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사람들이 어떤 말을 선택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도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일상 속 언어의 힘: 성평등, 환경, 정치 사례
우리 주변에서도 언어가 사회를 바꾸거나 현상을 규정짓는 예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일상적인 사례를 살펴볼까요?
- 성평등: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뚜렷한 이름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그전까지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죠. 최근에는 “미투(#MeToo)” 운동처럼 새로운 언어가 사회 운동의 구호가 되어 숨겨졌던 성폭력 피해 경험들이 드러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한편 *“유리천장”*이라는 말을 통해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이름을 붙이자, 그런 차별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고 깨부수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도 좋은 예입니다.
- 환경 문제: 환경 분야에서도 언어의 힘은 큽니다. 예전에는 *“지구 온난화”*라고 부르던 현상을 오늘날에는 *“기후 위기”*라고 부르는 추세입니다. 같은 현상이지만 **‘위기’**라는 말 덕분에 훨씬 더 급박하고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용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도 사람들의 경각심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또 “친환경”, “탄소 발자국”, “제로 웨이스트” 같은 새로운 용어들이 유행하면서, 기업과 소비자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이제는 일기예보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쓰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찾는 등 대기 오염에 대응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죠. 이처럼 환경문제에서도 언어는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숨은 주인공입니다.
- 정치적 담론: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는 특히 **프레임(frame)**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어떤 사안을 특정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만드는 말의 틀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같은 시위를 두고도 지지하는 쪽에서는 *“시민 저항”*이라고 부르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폭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르는 이름에 따라 그 사건에 대한 평가가 확 달라지겠지요. 또 정부의 새로운 정책을 누구는 *“개혁”*이라 칭찬하고, 누구는 *“혼란”*이라고 비판할 때, 우리는 각각 전혀 다른 사건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말을 선택하는 데 매우 신중합니다. 세금을 올리는 정책에도 *“증세”*보다는 *“조정”*이나 “개편” 같은 표현을 쓰면 덜 반발할 거라 생각하는 식이죠. 실제로도 사람들은 언어 표현에 영향을 받아 정책을 지지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정치적 담론에서는 말 한마디가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가집니다.
언어화의 힘과 한계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언어에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라고 한 것처럼요. 적절한 언어화는 보이지 않던 문제를 보이게 만들고, 퍼져나가는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예로, *“미투”*라는 두 글자가 수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어 목소리를 내게 했고, 결국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을 들 수 있죠. 이렇듯 말의 힘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해서, 우리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방향, 나아가서는 사회의 흐름까지 좌우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가 전지전능한 마법은 아닙니다. 언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요. 먼저, 언어는 현실을 완벽히 옮겨 담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느낌과 경험이 다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가령 아주 복잡미묘한 감정이나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바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말로 표현 못 하겠어”라는 말,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이처럼 언어 밖의 영역도 분명 존재합니다.
또 언어의 영향력이 강한 만큼, 그 부작용도 있습니다. 특정 언어 표현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강화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울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 그 말 자체가 하나의 틀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억누르게 됩니다. 또 대중매체에서 어떤 집단을 일방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 이미지를 믿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계층을 가리켜 “게으르다”, “문제 일으킨다” 같은 표현을 쓴다면, 그 집단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부정적인 선입견을 품게 될지 모릅니다. 이렇듯 말은 현실을 비추는 동시에 때때로 왜곡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어만으로 세상이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말은 시작일 뿐, 거기에 담긴 의미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또 별개의 과제입니다. 가령 기업들이 상품 설명에 *“친환경”*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실제 환경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죠. 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차별적인 표현을 모두 바꿨다고 해도, 마음속 생각이나 구조적인 문제까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현실을 형성하는 한 요소이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실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이며, 언어는 그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맺으며
우리의 말 한마디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하며, 사회적인 변화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언어화의 개념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말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힘과 세상을 바꾸는 힘이 공존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와 위험도 존재합니다. 결국 어떤 말을 선택하고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데요.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일상에서 말을 사용할 때 무엇을 느끼셨나요? 만약 말이 현실을 만든다면, 앞으로 여러분은 어떤 말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나요? 생각해볼 만하지 않나요?